24년 8월 6일부터 8월 9일까지 3박 4일로 된 일정이었다. 목적은 술과 게임과 음식이었고 구경하러 돌아다니는 건 계획조차 안 했다. 8월의 규슈는 그런 걸 할 수 있는 여건이 못 된다.
출국
6호선에서 환승해 공항철도를 타고 인천공항 제1여객터미널에 도착했다. 인천공항을 오는 건 어림잡아 10년만의 일인데, 그때와 다름없이 사람은 많고 공항은 컸다. 이젠 탑승동과 제2여객터미널까지 생겼으니 정말 큰 공항이 된 거다. 물론 터미널 하나로 나가는 여행객의 입장에서야 큰 공항이란 다리만 더 아프게 하는 것이다.
위탁수하물 부치는 것과 출국심사까지 전부 자동화가 되어 있어 빠르게 면세구역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탑승 게이트 번호가 100번대였는데, 탑승동이라고 하는, 내부 지하철을 타고 이동할 수 있는 별개의 구역으로 이동해야 했다. 옛날에는 이런 게 없었는데, 별 게 다 생겼다.
대학생이 무슨 돈이 있으랴, 항공권은 LCC에서 예매해야 했다. 겨우 한시간 반 남짓 하는 비행에 사치를 부릴 마음도 없었고... 물론 문제가 되는 건 도착 지연. 오후 6시 10분 출발이었던 것 같은데 한 30분은 미뤄졌다. 덕분에 의자에 앉아 코딩할 시간을 벌어냈다. 노트북을 꺼내 한 달 뒤에 치러질 백준 대회 문제 세팅을 하다 보니 다들 일어나서 움직이는 분위기라 대충 줄 서서 비행기 타러 들어갔다.
비행기를 오랜만에 타는 건 아니었다. 지난 달에 부산에 대학교 친구 초대를 받아서 KTX 타고 내려가 시간을 좀 보냈는데, 올라가는 표를 끊는 걸 깜빡하는 바람에 김해에서 김포로 날아간 일이 있어서다. 언젠가 비행기도 지하철 타듯 탈 수 있게 되면 좋겠다. 항공공학의 비약적인 발전이 필요하겠지만.
도착
입국심사는 무난하게 끝마치고, 공항을 나오자마자 느껴지는 충격적인 온도와 습도에 헛웃음만 나왔다. 심지어 밤 9시가 다 되는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후쿠오카는 대충 제주도와 비슷한 위도니까 그럴만했다. 공항 셔틀버스를 타고 지하철로 이동해서 미리 충전해 둔 스이카를 애플페이로 찍고 탔다. 이건 부러웠다. 한국은 왜 안 되나? 애플이 죄다 죄...
숙소는 텐진역에서 조금 걸으면 나오는 곳이었다. 저렴한 비즈니스 호텔이었지만 그럭저럭 지낼만해 보였다. 에어컨 잘 나왔으니까 만족. 짐만 풀고 바로 나와서 저녁을 먹으러 갔는데 이때가 대충 10시쯤 됐다. 텐진역 지하상가의 라멘집을 가려고 했는데 이미 문을 닫았고, 어떻게 하나 고민하다가 출구 나오니 바로 24시간 규동집이 보여서 들어갔다. 이제 와 지도로 보니 정말 西1번 출구 바로 앞에 있는 곳이다. 키오스크에서 추천하는 걸로 시켰다. 뭘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맛은 있었는데 좀 짰다. 그렇게 먹고 숙소로 돌아가 씻고 잤다.
2일차
대충 10시 좀 넘어서 일어난 것 같다. 자기 전에 아침식사로 계획해 둔 라멘집으로 갔다. 관광객 많아서 웨이팅 있는 가게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한국어 메뉴판이 있긴 했다는 것 같다. 12시쯤 들어가서 빠르게 먹고 나왔다. 꽤 입맛에 맞았다. 마지막 날 아침에 먹은 이치란보다 맛있었던 것 같은데, 언젠가 또 갈 일이 있다면 교자도 같이 시켜 봐야지.
그 후엔 오락실 구경을 좀 했다. 2일차에 들른 곳은 라운드원 텐진점이었는데, 2층에 잔뜩 있던 메달 게임 기계와 그 앞에 앉아서 눈이 빠지도록 슬롯을 돌리는 사람들이 인상적이었다. 게임을 하는 연령대는 남녀노소 다양했었다. 물론 이건 실제 돈이 나가고 들어오는 종류의 게임이 아니라서 그래도 건전한가 싶다가도 그러면 이걸 왜 하는가 하는 의문은 들었다. 나름의 재미가 있으니까 하는 거겠지?
주된 목적은 그게 아니었기 때문에 音ゲー라고 적힌 세 번째 층으로 올라갔다. 여긴 사진 찍기엔 사람이 많아서 안 찍었는데, 아무래도 본토 대도시의 제일 큰 오락실이었다 보니 게임 라인업이나 기기 대수가 한국의 오락실에 비해서 압도적이었다. 관리도 잘 되어 있고. 한국에 없는 게임들 좀 하다가 하던 게임 좀 하고 저녁 먹을 시간 전에 나왔다.
저녁은 좀 멀리 있던 장어덮밥 집에서 먹었다. 맛은 그냥 장어덮밥.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또 가겠냐 하면 글쎄...
숙소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주문해 둔 술을 받으러 갔다. 물건이 주변 택배 회사에 오면 그걸 받으러 가는 구조인 것 같다. 이게 여행의 주 목적이었다. 항공권에 위탁수하물 옵션을 달아 둔 이유가 바로 이것.
내가 주문한 건 시그나토리 리벳cs 15년(61.2%)과 아녹 18년이고, 같이 간 친구는 알라키 15년을 주문했었다. 번거롭게 일본까지 가서 술을 사 오는 이유는 한국 주세 때문이다. 제발 개정 좀...
술을 봤으니 먹어야 하는데 이걸 당장 따서 먹을 순 없고, 나카스 쪽 주변의 몰트바에 갔다. 브랜디 소다 먼저 마시고, 스뱅15, 에드라두어 cs9, 클넬 12sr, 시그나토리 하팍15cs 정도가 기억이 난다. 더 마셨을 텐데 기억이 없네... 생각보다 저렴했어서 놀랐다. 한 명당 1만 엔도 안 나왔다. 한국에서 이렇게 마셨으면 며칠 굶어야 했을 거다. 바텐더 분이 번역기로 대화를 시도해 주셔서, 나도 일본어로 더듬더듬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눴다. 생각보다 대화가 매끄러워서 놀랐다. 그 정도 수준에서라면 언어는 결국 말만 통하면 되는 거구나 새삼 깨달았다. 언어 공부를 좀 해 볼까...
그렇게 바를 나오고 숙소에 돌아왔는데, 좀 출출해서 모츠나베를 먹으러 갔었다. 꽤 별로였다. 후쿠오카 명물이라고 먹어봐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낚이지 말 걸 그랬다. 비싸기만 비싸고... 어쨌든 그렇게 숙소로 돌아와서 잤다.
3일차
일찍 일어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전날 술을 먹어서 그런지 실패. 대충 오락실에 잠깐 갔다가 규카츠 집 웨이팅을 하려고 10시 반쯤 갔다. 11시 오픈이었는데 벌써 15팀이 앞에 있었다. 1시간은 기다려야 한대서 다시 오락실로 (걸어서 3분 거리에 있었기에 가능했다). 어찌어찌 잘 들어갔다. 꽤 유명한 집인지 한국 사람들이 잔뜩 있었다. 후쿠오카란 그런 곳이니까 하면서 맛있게 먹고 나왔다.
친구는 후쿠오카 타워 보러 가고, 나는 귀찮아서 오락실 투어를 계속했다. 라운드원 주변에 GiGO와 타이토 스테이션이 함께 있었는데, 타이토는 그리 볼 것 없었고 GiGO는 꽤 라인업이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이리저리 다니다 숙소로 돌아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큰 소리의 알람이 켜졌다.
아무래도 지진이 났다는 것 같았다. 그렇구나, 이제 뭘 해야 하지? 싶었는데 주변 사람들 모두 아무렇지도 않게 걷고 있길래 나도 그냥 숙소로 향했다. 지진도 안 느껴졌고 무슨 일이지 싶었는데, 미야자키현 쪽에서 진도 6.9의 지진이 났다는 소식을 뉴스로 접했다 (이후 7.1로 격상). 후쿠오카는 규슈 섬 반대편에 있으니까 별 일 아니겠네~ 하고 숙소에 들어가니 친구가 침대가 흔들렸다는 얘기를 했다.
지진은 지나간 거고 밥은 먹어야 하니 スシロー에 갔다. 2일차에 가려고 했을 땐 사람이 너무 많아서 포기했었는데, 3일차에 가니 사람이 거의 없어 웨이팅 없이 편하게 먹을 수 있었다. 가서는 뭐 때문에 사람이 이렇게 없나 하고 의아했는데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지진 때문에 관광객들이 먹으러 안 나온 건가 싶기도 하다. 스시는 프랜차이즈니까 크게 기대를 안 했는데 그것치고 퀄리티 좋게 나왔다. 연어랑 군함초밥 이것저것 잔뜩 먹고 2500엔. 가성비 최고!
원래 가려고 했던 바가 문을 닫아서 그냥 편의점에서 먹을 거 사들고 숙소로 돌아갔다. 짐빔 하이볼이랑 아사히 수퍼 드라이 한 캔 챙겨 갔는데, 하이볼은 안 먹을 걸 그랬다. 여행 마지막 날 밤은 특별할 것 없이 그렇게 끝났다. 애초에 후쿠오카 3박 4일이면 엄청 여유로운 거긴 하니까. 심지어 관광도 안 했고...
4일차 & 귀국
아침 7시쯤 일어나서 이치란 본점을 갔다. 꽤 이른 시간이라 다행히 사람 없이 잘 들어갔는데 먹고 나오니 한국 사람들 줄로 꽉 찼다. 그 사람들을 뒤로하고, 지하철 타고 후쿠오카 공항으로 가서 비행기 타고 인천으로 돌아왔다. 이번엔 15분 정도밖에 지연이 안 됐다. 놀라운 일이다.
인천공항 수하물 찾는 곳에서 한참을 기다려도 캐리어가 안 나오길래 안에 든 술 두 병 가격 책정이 잘못돼서 세관에 걸린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아무 자물쇠도 걸리지 않은 채 잘 나와 줬다. 그런데 캐리어가 엄청 무거워져서 집까지 끌고 오는 데 고생을 좀 했다. 돌아와서 사 온 술 한잔씩 마셔보고 잤다. 둘 다 맛있던데 좋은 가격에 잘 샀다. 이 정도면 일본은 신이고 무적이고 거대한 술장고 아닌가. 몇 병 비울 때쯤 또 가야지.
이 여행 이야기를 하니까 '넌 도대체 뭘 하러 간 거냐' 내지는 '돈 안 아깝냐' 하는 소리를 자꾸 듣는데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한국에서 도합 60에 구할 술을 일본에서 30도 안 되는 값에 구했다. 그럼 30만 원을 번 거 아닌가? 여기서 항공권 비용과 숙소비, 식비 등을 전부 제하면 3만 엔 남짓 된다. 겨우 3만 엔으로 일본 3박 4일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던 이 훌륭한 계획을 비하하는 일을 그들은 멈추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