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 7개를 선택한 덕에 바쁘게 살았다. 수학과의 코어 과목들(그래봐야 I 과목이다. 아직 II가 남았다)을 한꺼번에 들으니 부담이 더 늘었다. 시험 기간엔 정말 걸어다니는 시체였다. 일일 카페인 섭취량이 1g을 넘은 적도 있었다. 그래도 그 덕에 꽤 준수한 학점을 얻어 냈고, 지금까지의 평균 학점을 4.0 위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만세, 이제 조기졸업 요건을 충족시켰다. 공부만큼이나 노는 데도 시간을 많이 쏟았다. 그렇게 시간을 태워 대면서 일상으로의 회복을 시도했고 결과적으로는 무척 잘 되었다.
수학 과목
미분기하학 I, 대수학 I, 위상수학 I, 복소해석학 I를 이번 학기에 전부 들었다. 특별히 뭐가 더 재밌다거나 하진 않았고, 미분기하학 계산이 좀 힘들었다. 대수학이랑 위상수학은 새로 나오는 용어들이 너무 많지 않나 싶은데, 방학 때 미리 공부를 해 놔서 괜찮았다. 복소해석학은 교수님이 시험을 워낙 쉽게 내시기로 유명해서 벼락치기만 했는데, 예년보다 시험 난이도가 상승했다는 모양이다. 의외로 할 만 해서 열심히 벼락치기 했더니 크게 문제는 안 됐다.
다른 과목
나머지로는 컴퓨터학과 전공 세 개를 잡아 들었는데 '볼록최적화입문', '계산이론', '인공지능' 의 셋이다. 인공지능은 그냥 이미 아는 내용으로 잘 뭉갰고, 볼록최적화입문은 개념만 적당히 이해하고 문제 열심히 풀었더니 좋은 성적이 나왔다. 계산 이론은 오토마타 튜링 머신 이런 거 배우는 수업이었는데, 이걸 직접 디자인해야 하는 문제들이 나와서 재밌었다. 이번 학기 과목 중에 가장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게 공부했던 것 같다.
21학점이라고 말은 했지만 실질적으로 나가지도 않은 수업이 네다섯 개 돼서, 왜 6학점 들으면서 시험은 7개 보냐고 놀리는 사람도 있었다. 어차피 강의실에 앉아도 수업 안 들을 건데 집에서 해야 할 일이나 하는 게 낫지 않나 하하.
졸업하면
이제 대학 졸업이 가시권에 들어오는 시점이 되었다. 원하는 공부랑 대학원 준비 제대로 하고 새로운 종류의 7~년을 준비하는 시간이 되어야겠다. 7년 진짜 무지하게 아득하다. 그게 끝나고 나면 나이 앞자리가 3으로 바뀔 거다. 대학원으로 가면 또 시야가 트여서 뭘 하고 살 수 있을까 보이겠지... 어디 갖다 못 쓰는 공부 하는 건 아니니까. 곡물 가루를 밥숟가락으로 퍼먹는 것 같은 인생이다. 조용한 들판에 돗자리 펴 두고 커피나 홀짝이는 삶을 살고 싶었는데, 그러기에 100년은 너무 짧다고 쪼아대는 놈이 있다. 그렇다고 한 대 후려치면 자해 행위다.
마인드셋
내가 뭘 위해서 발버둥치며 공부하나 하고, 그런 질문을 던지면 좋은 꼴을 못 본다. 물음에 물음을 거쳐 가면 결국 너는 아무 의미 없이 그저 존재하는 유기물 덩어리이며 수십억 년간 그래 왔듯이 다시 개별 분자로 퍼질 것이야 하고, 그렇지만 아무도 물음 "너 앞으로 뭐 될래" 에 도자기에 담긴 탄산 칼슘 분말이 되겠다고는 답 안 한다. 살아가는 사람은 살 것이고 또 사는 데에 온 힘을 다할 것인데 스스로 소금을 뿌릴 필요는 없다. 나를 보는 내가 너무 간섭을 해서는 안 되는 것 같다. 두 층위 사이에 구분선 같은 것을 두는 편이 낫겠는데 그게 해탈의 경지 아닐까.
다음 학기는 수업 듣기보다 다른 것들에 집중하기 위해 18학점만, 그것도 쉬운 과목들로 채우기로 결정했다. 사실 2학기 수강신청을 26분 앞둔 시점에서 적는 글이다. 방학도 끝나간다.
정작 발행은 3학년 2학기가 시작한 이제서야 한다. 사는 게 바빴어서...